누군가의 재은, 나의 재은

다음 생엔 마호가니 가구가 될테야


안진모

고등학생 시절 우리 반에는 ‘안진모’라는 모임이 있었다.
‘안 친한데 진지한 이야기하는 모임’의 준말이다.
그게 얼마나 안 친했냐하면 그저 친구들이 우리가 이야기하는 걸 보고 “너희 친했어?”라고 하면
“아니?” 하고 다시 하던 이야기를 하는 정도.

처음에는 나와 짝꿍인 친구, 둘이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신기해하며 지나가던 친구들이 간간이 참여하면 둘에서 셋, 넷이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급식을 같이 먹고 하루 종일 붙어있어야 친한 사이인 줄 알았다.

지난주 가게 문을 열다, 어딘가 익숙한 눈매로 누군가 나를 쳐다보기에 나도 갸우뚱하며
그를 쳐다봤다.
‘안진모’를 핑계로 한참을 이야기하던 내 친구였다.
우리는 한주 뒤 오늘 다시 만났다.
식당에서 나를 마주 보던 친구는 눈시울을 붉혔고
나는 주책이라며 타박을 줬다. 생각하니 또 마음이 간질거린다.

우리는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가 사는 곳도, 형제 관계도 모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고민이 있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했는지는 줄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제 그만 ‘안진모’는 핑계일 뿐 우리는 사실 엄청 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친구는 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고등학생 때 얼마나 깊게 이야기를 했던지
지금도 있는 그대로 나를 봐주었다.

학교로 돌아온 나는 교수님께 하찮은 내 시험지의 첨삭을 받으며
어떻게 공부를 해나가야 할지 잠시 고민을 했지만
7년 만에 만난 친구가 3시간 동안 나에게 무슨 방어막을 씌워준 건지
그럼에도 나에게 확신이 들었고, 틈틈이 참 행복했다.

By:

Posted in:


“안진모” 글에 댓글 1개

댓글 남기기

워드프레스닷컴으로 이처럼 사이트 디자인
시작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