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심히 걸어도 양말 속으로 물이 스며드는
그런 비가 많이 오는 날에 말이야
근처 초등학교가 마치는 시간에 딱 걸려버렸어
작고 알록달록한 우산을 쓰고
아이들이 귀여운 이야기들을 하면서 우르르 지나가는데
한 아이가 우산을 뒤집어쓰고는 빗물을 담고 있는 거야
우산을 그릇같이 만들어서는 빗물이 담기는 걸 멍하니 보고 있는 아이를 보니
처음엔 좀 웃기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갑자기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한테 부러움이라는 감정은 참 드문 감정인데
그 아이가 너무 맑아서 투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는 빗물을 담기는커녕
흘려보내는 방법도 잘 모르는데
너는 사람들이 너를 보든 말든
우산이 제 역할을 하지 않고 옷이 젖든 말든
빗물을 담고 하늘 높이 들어서 구경하고 있었어
비 오는 날을 이렇게 즐길 줄 아는 걸 보곤
네가 꽤 멋진 사람으로 커갈 것 같더라
나중에 내 아이가 생긴다면 너를 닮았으면 좋겠어
젖은 채로 집에 와도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아
비오는 날은 그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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