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재은, 나의 재은

다음 생엔 마호가니 가구가 될테야


후기

3학년이 되고 나서는 풀어야 문제집들이
책장 칸을 차지하고 있던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보이지 않는 곳으로 밀어냈다.

그동안 나는 책을 좋아했던 터라
신간을 기다려 주문했던 작가의 에세이도 짧은 소설책도 자기개발서도 권씩 있었는데
왠지 책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맛봐서는 달콤한 것을 보고 있는 같아 괜한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공부와 관련이 없는 책들은 치워졌다.
그때부터였던 같다.
마음에 여유가 많이 사라진 것이.
하루를 통째로 공부를 하기에는 마음이 불안해서 뭐라도 붙잡고 있거나
언제부턴가 운동도 식사도 대충 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온전한 시간을 주는 것에 인색해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사람들뿐이라
그들을 멈춰세우고 얘기를 하기도 어려웠다.

매일 새로운 아침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서
일어나는 시간이 자꾸만 미뤄졌다.
밤에는 하루를 도저히 보내줄 수가 없어서
가장 늦게까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보내주질 않았다.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게 경쟁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다가도
당장 내가 있는 일이 생각나지 않아 어찌어찌 오늘을 살았다.

그렇다고 모든 시간을 치열하게 살았는지
아니라고 대답하기엔 억울한 기분이 들고
그렇다고 대답하기엔 조금 있던 공간이 남아있다.
다시 돌아가면 다를까 하는 후회는 없다.
공간은 작지만 그럼에도 매일 나를 위해 채워졌으니.

몸이 약해지니 주변의 부정적인 기운을 덮을 여유가 사라지고
저항 없이 그에 동의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오랜 친구들이 많이 그리워졌다.
내가 달라져버렸는지 의심이 때는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그래서 다시 가끔은 요리를 했고 가끔은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마음을 털어놓고 조금 가까워진 동기들도 생겼다.
에세이집을 간간이 들추어보고 영화나 드라마도 봤다.

몸과 마음이 다쳤다 나았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끝이 나기만을 기다려왔는데

끝에 다다른 지금, 달라질까 두려워했던 나는

달라졌다.

저기 구석은 단단해졌고 여기 부분은 유연해졌고

그럼에도 여전히 나임에 다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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