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오늘
이 길을 걸으려 흠뻑 젖어도 괜찮은 옷과 신발을 신고 왔어.
나를 아주 흠뻑 적셔도 좋아. 오늘은 이 길을 마구마구 느끼려고 아침부터 얼마나 설렜는지 몰라.
가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하얀 바지에 흙이 튈까 걱정하는 마음을 오늘은 일찌감치 침대에 놓고 왔단 말이지.
아무도 이 길에 가득 찬 수풀을 관리하지 않아.
남들은 너희를 잡초라고 부르지?
자기들 눈에 예쁜 꽃은 이름을 지어두고는 너희들은 잡초라고 뭉뚱그려 부르다니, 참 너무해.
아, 근데 모르는 누군가가 지은 이름이 뭐가 중요해. 이름이 너희를 존재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너희의 꽃은 귀엽고 사랑스러워. 오히려 이름이 없어서 나는 너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져.
아 자유로워. 이름도 없이 예쁜 너희가.
얼기설기 엉키고 하늘 위로 쭉 뻗는 풀들이.
사실 이 길을 지날 때, 가끔 너희가 짓이겨 내는 풀 내음을 맡으면 죄책감이 들곤 했어.
짙고 맑은 풀 내음이 사실은 풀이 흘리는 피가 아닌가 해서. 유난이지.
아마도, 아마도 너희는 아픔을 느끼지 않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이 길을 더 사랑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