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잘록해진 치약이 중심을 잃고 바닥을 뒹군다. 치약의 모습이 꽤나 사랑스러웠다. 오랜 친구를 대하듯 다정함이 피어올랐다.
나는 물건을 끝까지 써본 적이 많지 않다. 지금 와서는 왜인지 이런 고백을 하는 것이 부끄러운 기분이 들지만 난 항상 새것을 좋아했다. 쓰던 것들이 해지기도 전에 새로운 것들로 내 주변을 채웠다.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도 그랬다. 물론 이전의 사람들을 새사람으로 대체하는 일은 없었지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항상 즐거웠으니까. 어쩌면 가끔은 오랜친구보다 새 친구들을 만나는 걸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다 써나간 치약을 보고 새삼 내가 달라졌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의 나는내게 맞는 물건을 찾아 오래오래 쓰는 것이 좋고 그것이 바닥을 보이면 뿌듯하다. 이 물건도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었구나. 처음 그 물건을 보았을 때보다 지금의 모습이 더 마음에 든다.
그러고 보니 취향이 짙어질수록 물건을 자주 바꾸지 않고 새로 산 뒤 후회하는 일도 적어졌다.
취향이 짙다는 것은 실로 매력적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안다는 것이니까. 쉬이 따라 할 수없이 오랫동안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맞는지 연구해온 사람. 나는 아직 그 과정 중에 있지만 이마저 설레는 일이다. 언젠가는 나에게 더 가까워질수 있을 거란 느낌이 온다. 이마저 나를 사랑하는 일이니까.